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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케이스사관학원 화이팅!
작성일2020-01-17 20:51:38
원장님 이제야 글쓰게 되어 죄송합니다.

2차례의 연이은 낙방 .

암담했습니다.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나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는 친구들을 보았을 때, 가슴이 막혀왔습니다. 비참했습니다. 낙담했습니다. 뒷걸음 치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해 더욱 숨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암울한 시간을 보내다가 친구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함안에서 재수하고 대학 잘 갔다는 이야기. 재수 학원을 결정할 당시, 그 친구와 저는 기숙학원을 두고 고민했습니다. 저는 무조건 서울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쪽이었죠. 서울에서 활동하는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나름 확신에 찬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한 기숙학원에서. 친구는 함안에 위치한 서울케이스사관학원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수능을 치른 후, 친구는 예비 대학생이, 저는 예비 삼수생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실패와 성공의 차이를 만든 것인지 곰곰이 고민했습니다.

비슷한 학원비를 내면서 1년을 지냈음에도 그와 저의 기숙학원 생활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보충수업과 특강을 수시로 실시했지만 추가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공부는 안하면서 남들 들어서 불안한 마음에 특강들으면서 만만찮은 특강비를 내야했던 제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일주일에 2시간의 체육시간을 다 챙겨가며 뛰어 놀았던 경험, 3주에 2박 3일의 휴가 때마다 꼬박 꼬박 나와서 무척이나 힘들었던 양, 시간 계획 세워가며 놀았던 경험 등. 제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경악을 하더군요. 그렇게 놀고 언제 공부 하냐고. 자기는 휴가도 반납하고, 추석 때에도 학원에서 공부했다고 말이죠.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삼수 생활은 서울케이스사관학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월초, 학원 입소하던 날, 작은 규모의 학원에 100여명 가까운 학생이 수용된다는 것과 집 몇 채와 논, 밭만 있던 주변 환경에 놀랐습니다. 이천에 있는 기숙학원과는 상반되던 건물규모에 ‘이런 곳에서 공부가 될까’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건물 규모는 오히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효과적이었습니다. 행동반경이 좁은 것이 공부하는 시간을 훨씬 늘려주었거든요. 또한 자연과 정말 밀접한 주변 환경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담이 되었던 추가 비용은 정말 1원도 없었습니다. 저만해도 1년동안 5~6과목의 특강과 보충을 수시로 들었지만 정해진 학원비 외에 추기 비용을 내야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공중전화기만 7대이던 이천 모 기숙학원과는 달리, 한 달에 1번 전화사용이 가능했던 서울케이스사관학원은 학생들을 독하게 공부시켰습니다.

학원생활 또한 재수 때의 학원생활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새벽 6시 30분 기상. 눈곱도 떼기 전, 모자를 푹 눌러쓴 학생들의 손에는 저마다 영어단어장이 들려있습니다.  20분 동안 체조를 마치고 오전 7시, 씻고 하루 일과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식사시간에도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친구들의 손에는 단어장이 늘 떠나지 않습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는 친구들이 만든 공부 분위기에 나도 점점 동화됩니다. 나중에는 공부하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기위해, 친구와 사소한 이야기 나누는 시간마저 아깝게 생각했습니다.

학원 선생님들의 열정은 우리 학생들보다 더 강했습니다. 서울에서 유명 강사로 지내시고, 일주일에 3일 이상 함안에 내려와 우리와 같이 생활하시는 여러 선생님들. 몸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학생 질문 받아주느라 밤 12시를 넘긴 시각까지 교무실에서 학생들과 함께하시던 선생님의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편찮으신 우리 원장선생님. 서울에서 진료 받으시는 날, 학생들 생각에, 집에서 쉬시지도 않고 그날 저녁 기차로 내려오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선생님의 보다 강한 열정과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 학생들이 저마다 뿜어내는 강한 학구열은 식을 줄 몰랐고, 이 모든 것은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제 비참했던 수학점수도 그제야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학원에 입소하여 처음 치른 모의고사에서 수학점수는 60점이었습니다. 재수 때 늘 부동하던 수학점수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1년. 수능에서 수학 100점을 받게 되었고, 원하던 대학을 선택하여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삼수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동안 실패만 해왔기에 자신감도 없었을 뿐아니라, 가슴을 짓누르던 심리적 부담감에 더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아 불안해하던 저에게 질책과 조언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셨던 선생님, 눈 뜨면 항상 옆에 있는 친구들, 늘 다정하게 대해주시던 사감 선생님 등. 그 흔한 슈퍼마켓 하나, 반짝이는 간판들 하나 없는 시골에서, 삼수생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은 공간에 빽빽하게 모여있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힘든 삼수 과정동안 항상 옆에서 가족처럼 돌봐주신 원장선생님,  다른 교과 선생님, 사감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모두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김*현 올림